앞선 글에서 무효전력이 선로 리액턴스의 자기장에 갇히기 때문에 “소비된다”고 표현한다는 것까지 정리했다. 그런데 정리를 끝내자마자 더 큰 의문이 하나 생겼다. 에너지가 중간에서 붙잡혔다면 전류도 같이 줄어들어야 자연스럽지 않나? 그런데 교재의 어떤 식을 봐도 줄어드는 것은 오직 수전단 전압 VR뿐이다. 왜 페널티가 전압에만 몰릴까.
답의 절반은 계통이 무엇을 붙잡고 있느냐에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전력망은 정전압 계통(Constant Voltage System)으로 운전된다. 발전소의 AVR과 변전소 설비들이 송전단 전압 VS를 공칭 전압 근처, 대략 1.0 pu에 강제로 붙들어 놓는다.
반면 전류 I는 누가 붙잡고 있는 값이 아니다. 수용가가 모터를 돌리고 가전제품을 켜는 양에 따라 결정되는 종속 변수다. 출발지 전압이 고정되어 있고 전류는 부하가 정하는 대로 흐르니, 도중에 리액턴스를 만나 생기는 손실은 갈 곳이 하나뿐이다. 도착지 전압이 깎이는 형태로 전부 나타난다.
계통은 전압과 전류 중 하나를 고정하면 나머지 하나가 모든 외란을 떠안는 구조다. 우리 계통이 붙잡은 것은 전압이므로, 얻어맞는 쪽이 전압이라는 게 뒤집힌 결론이다.
나머지 절반은 키르히호프의 전류 법칙
송전선로는 발전소부터 부하까지 일렬로 이어진 직렬 회로다. KCL에 따라, 선로 중간에서 전류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 한 시작점 전류와 끝단 전류의 크기는 정확히 같아야 한다.
즉 에너지가 자기장에 갇혔다고 해서 “흐르는 전류의 크기” 자체가 선로 도중에 깎여 작아질 수는 없다. 전류는 동일하게 흐르되, 그 전류를 밀어붙이던 압력(전압)의 손실로만 드러난다. 앞 글의 소방 호스 비유로 돌아가면, 호스 중간에 구멍이 나지 않은 한 입구로 들어간 물의 양과 출구로 나온 물의 양은 같다. 깎인 것은 수압뿐이다.
벡터로 뜯어보면 무효전류가 전압 크기를 직접 갉아먹는다
여기까지는 “전압이 깎인다”는 것까지만 설명한다. 그런데 왜 하필 무효전력이 전압 크기를 그렇게 크게 깎는지는 페이저로 봐야 보인다. 선로 임피던스를 Z = R + jXL이라 하고, 전류를 유효전류 Ip와 지상 무효전류 Iq로 나누어 쓴다.
İ = Ip − j Iq
이 전류가 선로를 지나며 만드는 전압강하 벡터를 전개하면 이렇게 된다.
ΔV̇ = İ · Z = (Ip − j Iq)(R + j XL) = (IpR + IqXL) + j(IpXL − IqR)
- 실수부 (IpR + IqXL) — 원래 전압 벡터와 같은 방향에 놓여 전압의 크기를 직접 깎는다.
- 허수부 j(IpXL − IqR) — 전압 벡터와 직각이라 크기는 거의 건드리지 않고 위상각만 틀어놓는다.
여기서 눈여겨볼 항이 IqXL이다. 무효전류는 원래 전압보다 위상이 90° 뒤처져 있었는데(−j), 리액턴스를 통과하면서 다시 90°가 더해진다(+j). −j와 +j가 곱해지면서 실수 성분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무효전류는 전압 벡터와 정확히 일직선상에 서서, 전압의 길이를 그대로 잘라 먹는 브레이크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림에서 보듯 실수축 방향 성분만이 전압의 길이를 직접 줄인다. XL이 R보다 훨씬 큰 초고압 선로에서는 IqXL이 이 성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역률을 개선해 Iq를 줄이는 일이 왜 그렇게 전압 유지에 효과적인지, 이 한 항으로 설명된다.
거꾸로, 정전류 계통이라면 무엇이 흔들릴까
이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니 앞의 논리가 훨씬 선명해졌다. 정전류원은 전류를 강제로 붙잡는다. 선로 리액턴스가 커져 전류를 막으려 하면, 전원은 “전류는 무조건 일정하게 보내야 하니 내가 힘을 더 쓰겠다”며 송전단 전압을 스스로 끌어올린다.
- 부하 임피던스가 커지면 V = I·Z에서 I가 고정이므로 전압이 비례해 치솟는다.
- 무효전력 소비가 늘면 전류를 유지하기 위해 송·수전단 전압차가 극심하게 벌어지거나 위상각이 요동친다.
실제로 정전류로 운전하는 구간도 있다. HVDC는 선로 고장 시 순식간에 정전류 제어 모드로 전환해, 전압을 0 V 가까이 떨어뜨려서라도 전류가 정격 이상 흐르지 못하게 묶어버린다. 아크 용접기도 마찬가지다. 용접봉이 쇠에 닿으면 사실상 단락 상태가 되는데, 정전압 전원이었다면 전류가 폭주해 위험하다. 용접기는 정전류 특성이라 접촉 순간 전압을 스스로 확 떨어뜨려 전류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정리
- 선로에서 무효전력이 구속되어도 전류는 직렬 회로의 법칙에 의해 어디서나 같은 크기로 유지된다.
- 우리 계통은 발전소가 전압을 붙잡는 정전압 계통이라, 리액턴스의 페널티가 오직 수전단 전압 저하로만 귀결된다.
- 페이저로 보면 무효전류 성분 IqXL이 실수축에 정렬되어 전압 크기를 직접 깎는다.
- 정전류 계통이었다면 전류가 보호받는 대신 전압이 요동쳤을 것이다. 결국 계통이 무엇을 기준으로 잡느냐에 따라 스트레스의 표출 대상만 달라진다.
정전압과 정전류를 대칭으로 놓고 보니 두 축이 한 번에 정리됐다. 공부하며 적은 내용이라 틀린 곳이 있을 수 있으니, 이상한 부분은 알려주시면 고치겠다.
“전류는 그대로인데 왜 전압만 깎일까 — 정전압 계통의 진실”에 대한 2개의 생각